자비와 정의가 만나는 곳.

이정표는 이곳으로 이끕니다.

그것들은 깨어짐을 드러냅니다.
자비는 추락을 멈춥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이미 부서진 것을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중심에 서 있습니다.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감정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그것이 무엇인가

십자가는 하나의 개념이 아닙니다.

심판이 무시되지 않고
짊어져진 자리입니다.

정의가 외면되지 않고
이루어진 자리입니다.

자비가 감정에 머물지 않고
값을 치른 자리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그것을 면제할 수 없었고,
노력은 그것을 깨끗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무게는
다른 곳에 놓였습니다.

그 인격

십자가는 단지 나무와 쇠가 아닙니다.

한 인격입니다.

우리가 깨뜨린 것 속으로 들어오신 아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을 대신 지신 무죄한 분.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신 거룩하신 분.

우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속하기 위해.

죄를 눈감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응답하기 위해.

그 필요성

우화들은 드러냅니다.
교만을.
기만을.
자기 통치를.
불신을.

자비는 그 마지막 결과를
억제합니다.

그러나 오직 십자가만이
그것들을 해결합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드러남은 절망으로 이어지고,
자비는 지연에 머물며,
심판은 여전히 앞에 남아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초대

이것은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 속에서 스며드는 것도 아닙니다.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내려놓음으로.

개선이 아니라
신뢰로.

문은 열려 있습니다.

마무리

이정표는 가리킵니다.
자비는 개입합니다.
십자가는 남아 있습니다.

영국 및 외국 성서공회 발행 (1913년)